첫눈에 반했다. 처음 그날처럼.
글 주영삼 / 사진 Kyotography_
처음 마주한 순간 첫사랑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는 발레리나였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크고 검은 눈동자는 호수와 같았다. 작은 코는 예쁘게 오똑 솟았고, 입술에는 핑크빛이 돌았다. 반면 성격은 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사내아이처럼 털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가 실루엣이 드러나는 발레복을 입고 토슈즈 위에 올라 몸짓으로 음악을 그릴 때면, 세상은 황홀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르노삼성 XM3는 필자를 그녀 앞으로 되돌려 놓았다.
눈앞에 있는 모델은 TCE 260 RE 시그니처다. 얼굴에는 그녀의 쌍꺼풀처럼 짙고 또렷한 c자 모양의 데이라이트가 헤드램프를 감싸고 있다. 그 사이로는 오똑 솟은 태풍의 눈을 품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자리한다. 범퍼 하단부는 무광으로 시크함을 더했고, 그녀의 입꼬리처럼 안개등에서 살짝 솟아오른다.
옆모습은 쿠페처럼 유려하다. 프론트 오버행은 짧고 리어 오버행은 길어 안정적인 실루엣을 갖는다. 살짝 껑충해 보이는 느낌은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선 듯하다. 어색하지 않은 건 18인치 크기의 토슈즈 덕분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루프에서 C필러를 거쳐 트렁크 리드까지 이어지는 매끈한 곡선이다.
뒤태를 보면 먼저 잔뜩 업된 엉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테일게이트 하단을 기준으로 위는 세단의 모습을 아래는 SUV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좌우가 연결된 일체형 테일램프는 그녀의 오빠(SM6)와 언니(QM6)를 닮았다. 범퍼 하단부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무광으로 멋을 냈고,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듀얼 머플러 팁을 장식으로 품었다.
안을 들여다본다. 르노삼성 패밀리룩을 따르는 레이아웃이다. 블랙가죽시트 패키지가 적용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세련됐다. 스티어링 휠은 다소 큰 듯하지만 촉감은 부드럽다. 시트는 포근하지는 않아도, 사이드 볼스터가 무용수의 점프를 돕듯이 옆구리를 잘 잡아준다.
10.25인치 클러스터는 시인성과 색감이 좋으며, 9.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그녀의 성격처럼 시원하고 다루기 손쉽다. 하이라이트는 보라색을 품은 앰비언트 라이트. 시승 차량의 색상 ‘마이센 블루’와 자연스레 어우러져 보랏빛 향기를 완성한다.
과거는 미화된다. 추억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다. 2열 도어를 열고 들어서자 비로소 흠이 눈에 들어온다. XM3의 휠베이스는 2,720mm로 QM6보다 15mm가 더 길다. 제원만 보면 패밀리 SUV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멋스럽게 이어지는 매끈한 쿠페형 디자인은 178cm인 필자의 레그룸과 헤드룸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대신 적당히 기울어진 등받이가 편안한 촥좌감을 제공하고, 트렁크 공간이 넓다. 여기에 폴딩도 수준급이라 차박 캠핑에도 제격이다.
이제 XM3와 보라빛 밤을 누릴 시간이다. 출발하기 전 파워트레인을 훑어본다. 보닛을 열자 1.3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독일 게트락 7단 DCT 미션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 둘은 조화로운 몸짓으로 최고출력 152마력, 최대토크 26.0kg.m의 힘을 앞바퀴로 전달한다. 연비도 몸무게가 가벼워서 그런지 다운사이징 엔진으로는 준수한 13.2km/l다. 다만 시승 간에 필자의 운전 스타일로는 그 숫자를 볼 수 없었다(9~11km/l).
엔진 스타트 버튼으로 숙녀를 깨워본다. 추운 날 자다 깨서 그런지 약간의 소음과 진동을 내뱉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액셀레이터 페달은 부드럽게 세팅되어 있다. 다만 너무 부드러워 적응까지 조금 예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DCT 미션 특유의 출발 시 울컥거림이 발생할 때면 사춘기 소녀의 투정이 연상된다.
가속감은 경쾌하다. 1.3리터의 작은 심장에서 뿜어내는 152마력은 1,345kg의 가벼운 차체를 순식간에 100km/h에 도달하게 만든다. 특히, 스포츠모드를 활성화하면 더 높은 RPM을 사용하고 직관적인 스티어링 반응을 보여준다. 여기에 손가락으로 패들시프트를 튕기면 펀카로도 손색이 없다. 다만 준중형급의 노면 소음과 풍절음은 감수해야 한다.
브레이크 페달의 느낌은 부드럽고 답력이 고르게 분포되어 다루기 쉽다. 다만 스트로크가 길어 좀 더 깊이 밟는 습관이 필요하다. 브레이크 성능도 가벼운 차체와 100마력 중반의 출력을 다스리기에는 충분하다. 고속에서 급제동을 걸어도 믿음직스럽고, 잦은 스트레스에도 베이퍼 록이나 페이드 현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전륜에는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는 토션빔을 사용하는데, 승차감을 잡기 위해 전륜 댐퍼는 강하게 후륜의 댐퍼 세팅은 약하게 가져갔다. 강한 브레이킹에 노즈 다운이 없고, 고속 주행 시 로드 홀딩도 뛰어나다. 반면 급가속 시에는 스쿼트 현상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접지력이 낮은 타이어까지 거들어 토크 스티어를 더욱 강하게 발생시킨다. 요철과 범프 구간에서는 쿠페처럼 다소 단단하고, 평범한 도로에서는 SUV처럼 소프트하다.
막히는 도로에서도 문제가 없다. 최신형 모델답게 반자율주행 시스템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운전자의 피로를 줄여준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제법 똑똑해 정차 및 재출발을 지원하고, 차선이탈방지 시스템은 차선의 중간을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이탈 시 적극적으로 스티어링 휠을 조향한다. 여기에 테스트해보지 못한 긴급제동 보조시스템도 운전자의 짐을 덜어준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밤. XM3와의 짧은 만남은 그녀와의 재회였다. 돌이켜보면 발레리나는 춤추는 것 외에는 만사에 관심이 없었고, 성격도 까칠했다. 그런데도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매력적인 친구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XM3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작은 흠이 존재하지만, 사람을 홀리는 여러 가지 매력을 품고 있다. 날씨 좋은 어느 날, 보라 빛깔을 내는 XM3에서 그녀가 내려도 놀라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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