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글 주영삼 / 사진 차이슈
누구나 가을을 겪는다. 하지만 농부에게 가을은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다. 봄에 씨앗을 뿌리는 순간부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물론 달콤한 열매를 손에 넣는 것은 굉장히 고단한 일이다. 오랜 기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과 병충해로부터 농작물을 지켜야 한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19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매 순간이 위기다. 98년도에는 대우 그룹에 넘어갔고, 2004년에는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되어 기술력만 빼앗기는 아픔을 겼었다. 그리고 2011년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투자를 받으며 2016년 마침내 ‘티볼리’라는 걸출한 효자를 낳았다. 출시와 함께 돌풍을 일으킨 티볼리는 쌍용차에 큰 힘이 되었다. 쌍용차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마힌드라 그룹이 쌍용차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SUV 명가’는 다시금 갈 곳을 잃었다.
봄과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어떠하든 핑계를 받아줄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듯 쌍용차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 ‘올 뉴 렉스턴’을 출시했다. 녀석이 쌍용차가 그토록 바라던 가을 ‘추수물’이다.
때는 11월 13일. 따사로운 햇살과 높은 하늘 그리고 붉게 물든 단풍이 가을이 절정에 다 달았음을 알린다. 영종도로 향했다. ‘올 뉴 렉스턴’을 타고 만추를 만끽하기 위해서.
녀석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탄탄한 몸매의 헤비급 복서가 딱 맞는 검은색 슈트를 차려입는다면 이와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였다. 웅장하고 젠틀하다. 기존의 플래그쉽 SUV 다운 당당함은 물론이고 페이스 리프트를 통해 도시적인 세련미도 갖추었다.
전면부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이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G4 렉스턴 대비 그릴의 크기는 커졌고, 방패 형상의 패턴이 그릴 내부에 배열돼 남성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인상이다. 좌우로는 기존보다 직선 디자인을 강조한 듀얼 프로젝션 타입의 Full led 헤드램프가 적용됐다.
측면은 큰 변화가 없다. 기존의 캐릭터 라인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앞 펜더 그리고 뒤 펜더의 볼륨감을 만들어 주는 곡선과 도어 손잡이 윗부분에 심심함을 달래는 하나의 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모델에는 20인치 ‘더 블랙’ 전용 휠이 적용됐다.
후면부는 전면만큼 큰 변화가 있다. 리어램프는 T자 형상의 램프로 바뀌었고 방향지시등은 범퍼로 자리를 옮겼다. 또한 기존에 없던 듀얼 테일파이프 가니시를 적용해 스포티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퀼팅 나파가죽 시트다. 버킷 시트 형상을 취하고 있는 1열은 눈으로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며 앉았을 때에도 볼륨감 있는 볼스터가 몸을 감싸주어 편안한 착석감을 제공한다.
스티어링 휠은 4스포크 타입의 D 컷 스포츠 핸들을 적용했다. 기존 대비 좀 더 젊고 스포티한 느낌을 받았다. 계기판은 12.3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가 적용됐다. 기본적인 주행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정 변경을 통하여 내비게이션 경로와 각종 콘텐츠를 보여준다.
시인성 또한 나쁘지 않다. 다만 클러스터의 경우 3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어 이미지의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연비를 나타내는 게이지의 경우 메뉴를 조작해 따로 봐야 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전석에서 2열로 자리를 옮겨 앉아 보았다. 178cm인 필자 기준으로 운전석을 세팅하고 2열에 앉으면 주먹 2개가 들어가는 레그룸이 보장된다. 헤드룸 역시 넉넉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시트다. 기존 대비 볼스터(어깨를 감싸는 측면부)가 증대됐으며 등받이 각도가 139도까지 리클라이닝이 가능하다. 장거리 여행에도 불편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2열 시트가 완벽하게 폴딩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차박 캠핑을 하려면 쌍용차에서 제공하는 커스터마이징 제품 혹은 애프터마켓 용품을 이용해야 한다.
더 잘생겨진 외모 그리고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을 더한 실내. 그렇다면 주행 성능은 어떨까. 궁금했지만 그와 동시에 시동을 걸기 꺼려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는 2톤이 넘는 이 녀석에 들어간 심장이 고작 2,200cc의 작은(?) 엔진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제발 실망시키지 말아다오”라고 녀석에게 말하며 ‘START’ 버튼을 눌렀다. ‘커거겅’ 하는 디젤 특유의 소리와 함께 녀석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영락없는 디젤 차량의 엔진음이 들린다. 하지만 외부와 실내를 차단하면 디젤 차량의 특유 소음과 진동을 느낄 수 없다.
“조용하긴 하네”라는 혼잣말과 함께 부드럽게 악셀 페달을 밟았다. 페달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엔진과 기민하게 일하는 변속기에 다소 놀랐다. 필자가 예상한 무겁고 둔탁한 가속감이 아니다.
‘올 뉴 렉스턴’의 적용된 파워트레인은 2,200cc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조화를 이루어 최고출력 202마력 최대토크 45.0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기존 대비 각각 15마력과 토크 2.0kg∙m가 향상됐다. 최대토크의 경우 일상 영역에서 자주 사용하는 1,600rpm부터 2,600rmp 사이에 형성되는데 이것이 중량 대비 낮은 마력을 커버한다.
그렇다면 급가속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풀 악셀링을 하자 약간의 터보렉가 함께 가속이 진행된다. 다만 부드러운 악셀링을 할 때와 달리 디젤 엔진이 뿜어내는 소음은 실내로 유입된다. 출력에 대해서만 평하자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정말 알맞은 수준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답답하지는 않다.
변속기는 기존에 사용하던 7단 변속기에서 8단 변속기로 변경돼 변속감이 부드럽고 충격이 없으며 좀 더 상황에 맞는 RPM을 사용한다. 또한 G4 렉스턴 보다 정숙하고 연비도 11.6km/l로 10%가량 향상된 모습을 보여준다. 주행모드는 노멀, 스포츠, 윈터 3가지를 지원하는데 스포츠 모드의 경우 아주 조금 스티어링이 무거워지고 아주 조금 고 rpm을 사용한다. 인식하지 않으면 느끼기 힘들지만 스포츠성에 초점을 둔 차량이 아니므로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티어링 반응은 꽤나 즉각적이다. 신규 랙 타입(R-EPS) 스티어링 시스템을 적용해 작은 핸들링에도 재빠르게 반응하며 길게 이어진 직선 도로를 달릴 경우에는 보타가 필요 없다. 또한 속도 감응식 스티어링 휠을 적용하여 저속에서는 가볍고 고속에서는 무겁게 변하는데 이질감이 없는 것이 좋다.
‘올 뉴 렉스턴’을 시승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승차감이다. 이 차량은 전륜에는 ‘더블위시본’, 후륜에는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특히 ‘더블위시본’을 적용해서 얻는 진동 처리와 댐핑 제어 능력은 노면의 변화와 스트레스에서 운전자가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서스펜션 세팅은 고급 세단과 비슷한 느낌이다. 단단하지 않고 소프트한 것에 가깝다. 노면의 상태와 그에 따른 느낌을 한 번 걸러서 운전자에게 전해준다. 물론 온 로드와 오프로드를 오가며 주행할 수 있도록 차고를 높였기 때문에 주행 중 핸들을 좌우로 급격하게 돌릴 경우 생기는 ‘롤링’은 큰 편이다. 물론 위협을 느끼거나 불안함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브레이크 성능은 어떨까. 2톤이 넘는 차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아이를 위해 구입하는 차량이라면 달리기 능력보다 브레이킹 능력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먼저 브레이크 페달은 예민하지 않아서 좋다. 발만 가져다 대도 ‘턱턱’ 브레이크가 걸리는 세팅을 가진 차를 몰다 보면 피곤하기 그지없다. 다행히도 올 뉴 렉스턴의 브레이크 세팅은 운전자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속도를 올린 후 긴급 상황 시 이루어지는 급 브레이킹도 시도해 보았다. 브레이크 페달이 부서질 만큼 강하게 밟아도 차량의 앞머리가 급격히 숙여지는 노즈 다이브는 크지 않다.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브레이크에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베이퍼 록’과 ‘페이드’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 잘 서는 차다.
쌍용차는 ‘올 뉴 렉스턴’을 출시하며 ‘렉스턴이니까 믿고 간다’라는 슬로건을 내밀었다. 이와 같은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은 초고강도 기가 스틸을 적용한 ‘쿼드 프레임 바디’와 ‘9개의 에어백’ 그리고 주행 안전 보조 시스템 ‘딥 컨트롤’에 있다.
경험해 볼 수 있는 건 주행 안전 보조 시스템뿐이다. 꽤 똑똑하다. 앞 차량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차로 중심으로 가는 ‘IACC’는 운전자의 피로도를 줄여주었고, 하차 시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해 주는 안전 하차 경고(SEW) 시스템도 잘 작동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주행 보조 장치가 운전자의 개입을 요구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렉스턴과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돌아오는 길, 어느새 영종도는 붉은 노을빛으로 가득했다. 쌍용차가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출시한 올 뉴 렉스턴. SUV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시킬 '달콤한 열매'가 될 수 있을까.
쌍용자동차 올 뉴 렉스턴 '더 블랙'
전장X전폭X전고 4,850X1,960X1,825mm / 축거 2,865mm / 엔진 2.2 디젤
배기량 2,157cc / 출력 202ps / 토크 45kg·m / 미션 8단 자동변속기
구동방식 4WD / 연비 11.1km/l / 가격 4,97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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